"축구찼냐!?

"아뇨..축구차는거 보러가다가..그만


ㅋㅋ 정말로 축구 구경하러가다가 발을 접질러버렸다. 그러곤 조심했어야 되는데 계단을 오르내리고, 뛰어다니고;
나의 인대는 그렇게 늘어나버렸다.




한동안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가,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내돈은 소중하니까요~(으..응.....)

헌데 정말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눈길을 피하고, 자는 척하는게 보였다~ 우와... 이렇구나~ 세상이~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보았을때 참..말문이 조금 막혔다.

헌데, 딱 한번 나를 보자마자 자리를 양보해주려 일어난 고마운 분이 계셨다.
헌데,헌데, 그분이 내리실때 보니까 발목이 완전히 돌아가서 잘 못걸으시는 분이셨다...

진짜.. 죄송하고 고마웠다.

본인이 발이 불편하시니까 남의 불편함도 보였으리라..




사실 우리는 자기의 고통은 한없이 크게 느끼고, 남의 고통은 간과하기 싶다.
또, 내 잘못은 간과하지만, 남의 잘못은 크게 느끼곤 한다.


고통은 내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나의 고통만 쉽게 느낄테고,
잘못은 눈으로 보이니, 밖으로 향한 눈은 남의 잘못을 더 보기 쉬울것이다.


하지만 남의 고통을 볼줄 알고, 나의 잘못을 더 볼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좀더 괜찮은 사람이 될수 있을텐데..



월간 마음수련에 좋은 글이 있어서 또 한번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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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에게 구救인人이 된다면

글 박완서 소설가

이 글은 박완서님의 산문집 <호미>에 수록된 글로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제법 눈다운 첫눈이 오고 나서 열흘은 된 것 같은데도 앞산의 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라보이는 앞산이 북향인 까닭도 있지만 근래에 드물게 추위가 오래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곧 한 해가 가고 한 살을 더하겠구나, 심란한 마음으로 잎 떨군 숲 사이로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순결한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시골서 보낸 어린 날의 세시풍속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때 우리 마을엔 가까이에 절도 없고, 교회당도 없었다. 다만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하는 이웃 마을에 무당 집이 하나 있었는데 여러 마을이 다들 그 집 단골이었다. 단골이라고 해서 자주 가는 건 아니고 집안에 특별한 우환이나 걱정이 없다면 일년에 한 번 구정 보름 안에 다녀오곤 했다. 머리에 한두 됫박가량의 쌀자루를 인 아낙네들이 수다를 떨면서 하얀 고개를 넘으면 그건 무당 집 행차였다.

나는 그 새해 무꾸리에 곧잘 할머니를 따라가곤 했는데, 동네 사람 사는 사정에 빤한 무당은 새해 운수를 점쳐준다기보다는 무탈하고 무병하라는 덕담으로 일관했고, 객지로 나간 자식을 위해서 가는 곳마다 귀인을 만나라고 빌어주곤 했다.

정초에 무꾸리 다음으로 많이 하는 게 토정비결 보기였는데 거기에도 귀인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농촌이 피폐해지면서 살 길을 찾아 대처로 나가는 젊은이가 늘어날 때였다. 끼고 사는 식구보다 객지에 나간 자식을 위해 어른들이 귀인을 갈망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귀인으로도 들리고 구인으로도 들리는 그 말의 정확한 뜻은 모르고 있었다.

다만 간절하다 못해 비굴하기까지 한 어감으로 봐서 귀하고 높은 사람이려니 했다.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자식의 신상이 편해지고 출세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구차스럽고 의존적인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귀인으로 높여 부르는 줄 알았다.

그 시절 순박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 이가 귀할 귀(貴)자 귀인이 아니라 건질 구(救)자 구인이란 걸 안 지는 얼마 안 된다. 구인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를 돕는 사람으로 돼 있다. 큰 곤경에 처하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누구나 부딪힐 수 있는 타인의 불친절이 우리의 하루를 얼마나 살맛 안 나고 불행하게 하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목숨을 끊는다든가, 자포자기해 돌이킬 수 없는 과실을 저지르는 것도 그 직전에 누군가의 친절한 한마디만 있어도 일어나지 않을 불행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작은 불친절 때문에 지구를 떠나고 싶도록 참담해지기도 하고, 내 식구만 챙기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불빛 은성한 내 집 창문 밑에서 고독한 사람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구세주라고 믿는 예수께서도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는 게 바로 당신에게 해준 것과 같다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당신을 우리 중의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낮춤으로써 당신은 우리 가운데 계심을, 세상을 구하는 건 바로 너, 바로 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걸 가르치셨다. 우리가 서로에게 구인이 되지 못한다면 구세주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런 뜻으로 근래에 기쁘게 읽고 크게 감동한 마더 테레사의 시를 한 편 소개하고 이 글을 끝마치고자 한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월간 마음수련 2010년 2월호 중_






내겐 아무것도 아닌 아주 작은 말한마디, 행동 하나가 세상을 바꿀수 있을지도 모른다면,
우리는 지금 세상을 얼마나 경솔하게 살아가고 있는걸까..?

이렇게 매일 반성하며 살아갈수만 있다해도, 우리 삶은 훨씬 향기로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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